2005년 가을,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몇몇 도시들의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한 노력들을 보기 위해 방문하면서 비엔나를 찾았다.  비엔나 공과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한 후배의 소개로 비엔나의 유명 건축가와 그들이 설계한 건축물들,  지방의제21(Local Agenda21) 관련 단체들을 방문하면서 짧지만 비엔나의 구석구석을 훓어보았었다.  그때 이후 비엔나는 나에게 참 살고싶은 도시로 다가왔다.  유럽의 여러 도시들을 다녀보면서도 비엔나와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는 곳을 만나지 못했다.  짧은 여정이었지만 본 것들을 여기 싣는다. 

비엔나는 수백년동안 합스부르크 왕가의 수도역할을 하면서 유럽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는 도시로 성장해왔다. 비엔나는 오스트리아의 수도로서 인구 1백 80만에 이르는 대도시이다.  오스트리아는  1,2차 세계대전이후 영세중립국을 표방하면서 정치사회적으로는 오래동안 사회민주주의 체계를 유지해오면서 주택, 의료, 교육, 문화 등에서 어느 유럽도시 못지 않은 복지체계를 구축해왔다.  특히
비엔나는 2001년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도시 전체가 지정되었고, 2008년에는 삶의 질(the quality of life) 순위에서 세계 2위를 기록했고, 2005년에는 캐나다 벵쿠버와 함께 삶의 질 1위를 기록한 도시이다.

비엔나는 옛날 몽골제국에 점령된 적이 있고, 2차대전때는 독일군에 일찍이 정복되는 수난이 있었는데 폴란드의 바르샤바같은 도시가 독일의 폭격에 아름다운 도시전체가 초토화가 된 반면 비엔나는 예전 모습 그대로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것일반 시민들의 문화에 대한 높은 인식으로 인해 폭격으로 파괴된 유산의 복원에 집중하였기 때문이었고, 독일이 복원에 있어서 새로운 건축인 모던과 포스트모던에 집중했다면, 오스트리아는 원형 복원과 도시의 형태 복원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오늘날의 '색깔있는 도시'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러한 도시 복원과 원형유지는 오늘날의 오스트리아에 엄청난 행운임에 틀림없다.  그것은 오스트리아가 1차대전을 일으킨 독일과 함께 독일어를 사용하는 게르만족이 세운 나라이기도 하지만 히틀러가 합스부르크가의 피를 이어받았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또한 히틀러는 개인적으로 미술과 건축을 좋아해서 비엔나 예술 아카데미의 건축학과에 지원했다가 떨어졌기때문에 실제로 비엔나에 대한 자부심과 열등감이 동시에 존재했기 때문에 비엔나를 크게 훼손시키지 않았다고도 한다. 

비엔나는 음악적으로는 오페라가 유명하고 모짜르트의 음악적 모태역할을 한 곳이기도 하다. 실제 모짜르트는  오스트리아 짤츠부르크에서 태어났지만 이곳 비엔나를 배경으로 그의 음악적 재능과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그리고 미술부문에서는  클림트박물관이 있어 클림트미술을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 정치적으로는  유엔(UN)의 여러 기구들과 국제석유수출국기구(OPEC)을
 비엔나로 유치해서 해마다 수많은 국제회의들이 이곳에서 열리기도 하는 곳이다.  

비엔나는 정말 많은 자원을 가진 곳이다. 유럽의 모든 유명도시들이 그러하듯 역사적 유산과 현대적 기능, 지속가능한 도시를 향하여 끊임없이 고민을 하고 있는 도시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무엇보다도 교육, 문화, 주택, 의료, 양육 등 모든 면에서 북유럽 복지국가 못지 않은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이 부러움을 준다.  비엔나의 도시계획적 측면, 건축적인 면, 환경적으로 친근한 도시의 모습을 사진자료로 나타내고자 한다.


비엔나를 방문하는 기간에 비엔나 도시계획에 대한 전시회가 있어서 들렀다. 비엔나 전체 조감도가 이채롭다. 전체적으로 주황색을 띤 부분이 도시계획으로 고도제한이 있는 주거지이다.  노란선 바깥쪽에 표시한 부분이 귀어텔(Gurtel)로 불리는 링도로이다. 귀어텔이 일종의 그린벨트 역할을 하면서 귀어텔 안쪽은 엄격히 고도제한과 모든 건축행위에 대해 허가를 받아야 한다. 또한 1700년대 중반 합스부르크 프란츠 1세의 명령에 의해 계획된 링 스트라세(Ringstrasse. 독일어로 순환하는 링도로라는 뜻. 안쪽 노란선부분)가 도시중심가를 흐른다. 그당시 신성로마제국 황제였던 프란츠 1세는 방어용 성곽으로 둘러싸인 이곳을 큰 도로로 만들면서 유명 건축가들에게 도로주변으로 국립오페라극장 등과 같은 유명건축물들을 짓게 하였다. 지금도 링 스트라세 주변에 고풍스런 카페와 전통건축물들이 들어서 있고 링스트라세 안쪽과 주변은 철저히 관리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뉴브강(독일어로 Danube River. 영어로는 Donau River) 중간에 노란색 0 표시는 인공섬인 도나우섬과 그 속에 있는 도나우 시티(Donau city)의 모습이고 파란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도나우 운하(Donau Canal)이다.    



비엔나의 전경모습.
도나우 강이 비엔나 시를 둘러싸고 흐르고 있고, 위 사진에서는 멀리 도나우 시티와 Donauturm(비엔나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 : 251m) 으로 불리는 탑이 보인다. 유럽도시건축의 특징이 미국처럼 용도지역제(zoning)로 도시가 발달된 것이 아니기때문에 건물과 건물들이 붙어있고 붙은 건물들이 하나의 블록을 형성한다는 점이다. 마치 ㅁ 자형 모양을 하고 있는데 ㅁ 자형의 가운데 비어있는 부분을 독일어로 HOF 라고 한다.(맥주라는 말은 이말에서 유래되었는데 사실 ㅁ 자형 공간을 조경과 휴식공간으로 활용했는데 그곳에서 맥주를 마시는게 HOF 가 된 것이다) ㅁ 자형 건물모양은 도시의 밀도를 높이면서 고층화를 막기도 하지만 도시전체가 스프롤(확장)되지 않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쇤브룬 궁전의 웅장한 조감도 모습. 앞의 쇤브룬 Palace 의 모습과 우측의 식물원, 동물원의 모습이 보인다.


쇤브룬 궁전(Schoenbrunn palace)의 모습.
합스부르크왕가의 실제적인 여자황제인 마리 테레지아가 15번째 자녀인 마리 앙뚜아네트(프랑스 루이 16세의 부인)의 사치의 상징인 베르사이유 궁전의 정원을 보고 나서 이곳에 정원을 조성했다고 한다. 이 궁전에는 1752년에 세계 최초의 동물원을 두게 될 정도로 합스부르크 왕가의 위세를 볼 수 있을 만큼 역사적으로 유래깊은 곳이기도 하다. 규모의 위용이나 나무의 웅장함과 정갈하게 가꾼 모습은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고, 인공적 멋을 주지만 정겨움을 주진 않는 것같다. 이후 왕실 정원양식은 영국식 귀족들의 픽쳐레스크식 정원으로 발전하고 이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왕정이 폐하고 공화정이 실시되면서 대중들에게 왕실이 누리던 정원을 누릴 수 있도록 한다는 의미에서 오늘날의 뉴욕 센트럴파크와 같은 인공적이면서 공공적인 정원조성운동으로 발전하게 된다
.  그런 면에서 '공원(park)은 시민성의 발로이자 시민의 권리'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성 슈테판 성당과 광장의 모습.
비엔나 가장 중심가의 모습이다. 까밀로 지테는 이러한 유럽 중세도시의 광장과 그 광장을 둘러싼 건축 공간을 가장 인간적이고 친밀한 공간이라고 했다. 이 사진에서는 유럽건물의 특징적인 ㅁ 자형 중정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비엔나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유럽 중세도시들은 도심내 중앙에 위치한 교회당 첨탑높이이상 건물을 짓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성 슈테판 성당앞의 고건축물들과 보행자도로 그리고 노천카페들.
넓은 보행자전용거리 중앙을 막아선 노천 카페가 오히려 보행자들의 보행을 막기는 커녕 도시의 활기의 높여준다. 보행자전용도로이지만 상인들의 불만은 없다. 이곳의 활기는 상권에도 도움이 되는 만큼 상인들의 수송편의를 위한다는 명분과 도심통과를 목적으로 한 자동차가 설 자리는 없다.



성 슈테판 성당의 외부와 내부모습. 성 슈테판 성당은 12세기 중엽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었으나, 1258년의 화재로 서쪽벽면을 제외한 전체 건물이 없어져 버렸다고 한다. 한 세기 반이 지난 1359년에 65년에 걸친 공사끝에 고딕양식의 첨탑건물이 완공되었다. 스테판 성당의 건축은 로마네스크, 고딕, 바로크 양식 등 다양한 건축양식이 도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모짜르트의 결혼식과 장례식이 열렸고, 합스부르크 왕가의 왕족들이 묻혀있는 곳이기도 하다.



성 슈테판 성당의 골치덩이인 가중나무(Goetter Baum)의 모습.
비엔나 건축위원회에서 뿌리가 교회지하까지 뿌리를 내린 이 나무를 벨 것인지, 그냥 둘 것인지를 두고 토론이 열렸는데 결과적으로 두기로 했다. 비엔나에서 '도시도 자연이다'는 생각이 넓게 펴져 있다. 도시속에 들어온 귀화식물들을 그대로 두고 관찰하며 관리하는것. 본래 도시가 자연을 파괴하고 생성된 것이니만큼 귀화식물들 또한 그대로 적응하도록 하자는 것. 그리고 인공적이고 인위적인 잔디나 전지방식의 정원을 가꾸는 것에서 자연그대로 두자는 사상이 널리 펴지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쿠바의 도시농업을 모티브로 한 도시농업에 대한 구상도 일부 실현시켜 나갈려고 하고 있다. 


국회의사당 근처인 호프부르크(Hofburg)앞의 도시농업 공간으로 일시적으로 시민들에게 나누어준 땅
본래 잔디와 정원이었던 곳을 농사짓는 곳으로 만들었다. 
이 금싸라기같은 땅에 유기농농사짓는다고 퇴비냄새가 진동하게 만들다니...  쿠바의 도시농업 열풍이 비엔나에까지 불어왔다.
지금은 매우 실험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정말 진지한 고민을 하고 있는 중이다.  한국 지방자치단체들도 본받아야 할 일...

 

비엔나 시청의 모습.
눈에 보이는 시청앞 전체가 보행자거리다. 비엔나 시청은  Friedrich Schmidt (1825-1891)에 의해서 1872년에 시공해서 1883년에 완공되었다.  이 시청건물은 다른 역사적 건물처럼 링 스트라세에 위치해 있는데 성당건물처럼 고딕양식의 첨탑양식을 채용하였다.




비엔나의 대표적인 화가이자 건축가의 한 사람인 훈데르트바스(Hundertwasser)가 설계한 대표적 건물모습. 
훈데르트바스는 건축가라기보다는 아티스트에 가까운 사람이다. 그는 직선을 거부하고 자연의 밝은 색을 사용하고 보통 건축의 직사각형, 대칭적 형태를 거부하고, 타일과 동물문양 등을 자주 사용함으로써 가우디와 비교되기도 한다. 이 건물은 비엔나의 서민지역 주민들의 공동주택으로 설계되었고, 설계비를 받지 않았다고 한다. 건물내와 옥상에 나무가 자라게 하는 등 그 특유의 자연적 기법이 표현되었다.  

비엔나에 있는 공동체주택(co-Housing, 한국에서는 동호인주택이라고도 한다)인 자륵 파브릭(Sargfabrik 1)
외관으로 보면 보통의 다세대주택(연립주택) 처럼 보인다. 이 건물은 입주자들이 7년동안 건축가와 함께 모여 토론하면서 집의 위치, 집의 형태, 공유공간의 형태, 공동의 규약, 개인집들의 모양 등까지 토론하면서 만든 공유주택이다. 한국의 집장사들이 공급하는 집을 거저 소유와 투기의 수단으로 사는 것을 지양하고 다세대주택이나 재건축조합들은 이런 모델들을 참조해볼 일이다. 함께 공유공간을 갖고, 집들간의 유대감이 높은 그런 건축을 지향하는 것은 꿈은 아닐 것이다.  이 건물은 비엔나시의 지원하에 만들어진 서민용 주거지인데 이 건물을 설계한 Franz Sumnitsch는 오토 바그너 건축상을 수상하였다. 



중수도 시설을 이용한 연못. 정화기능과 건물 전체의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매우 자유분방하고 다양한 개인 집들의 설계모습.
계단과 옆의 어린이용 슬라이딩 시설. 거실 기능을 하는 공간이 보인다. 밑으로 내려가면 침실 등이 위치해 있다. 무엇보다도 다세대 집 모두 각자의 욕구와 기호에 따라 설계되어 진다는 점이 특이하다.

 

공동세탁실과 작은 도서관의 모습.
도서관을 올라가는 설계가 매우 특이하다. 집도 그렇지만 도서관 등도 다락방이나 까치방처럼 좁은 공간을 다양한 설계아이디어를 동원해서 매우 친근감있고 활용도 높게 설계한 것이 돋보인다. 사진에는 싣지 못했지만 지하공간에는  카페, 수영장, 회의실, 작은 공연장, 놀이방 등이 마련되어 있고, 지역주민들과 함께 공유하기 위해서 개방되어 운영하고 있다. 


가소메터(Gasometer)
1851년경 역사상 최초로 열린 런던박람회에서 런던시내 가로등에 역사상 최초로 '가스등'이 선보였다. 그당시 박람회에 참석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밤거리를 밝히는 '가스등' 이 너무도 경이로왔던 것이다. 가스등의 등장은 수천년동안 촛불과 기름등에 의존하던 인류에게 '밤무대(?)'가 대중들의 것으로 다가오게 만들었다.  비엔나에 있는 이 4동의 건물은 1889년 건설당시 유럽에서 가장 큰 가스저장탱크였고, 100년 가까이 비엔나 시내를 밝히는 가스등의 원료를 공급하던 곳이었다. 하지만 Town-Gas(석탄이나 콜타르를 이용한 가스)가 천연가스(Natural Gas)로 대체되면서 1984년 가동을 중단하게 되었다. 그후 역사문화재로 지정된 이곳을 비엔나 시정부가 가스탱크를 활용하기 위한 설계공모를 하게 되고 이 건물들이 외관의 벽돌모양은 그대로 유지한 채 새로운 건축물로 부활하면서 비엔나의 새로운 명물이 되었다. 


  



지하부분은 아케이트, 레스토랑, 쇼핑센터, 공연장 등으로 이루어져 있고, 1층은 사무공간, 2층이상은 주거용으로 설계되어 있다. 가스저장탱크인 관계로 바깥쪽의 채광이 부족한 것을 보충하기 위해 지붕과 안쪽부분, 그라운드 부분은 거의 유리소재로 마감해서 채광을 높인 것이 돋보인다.



가소메터는 1999년에 건축해서 2001년 10월에 문을 연다. 가소메터 A는 장 누벨(Jean Nouvel)이, B는 쿠프 힘 멜블라우(Coop Himmelblau)가, C는  만프레트 베도른(Manfred Wehdorn)이, D는 빌헬름 홀츠바우어(Wilhelm Holzbauer)가 설계했다.  비엔나시는  공연장과 쇼핑센터, 1층은 사무공간, 2층이상은 아파트로 사용하는 설계를 선택했고, 이 건물전체를 비엔나-부다페스트 세계박람회의 호텔겸 컨프런스 센터로 사용하려고 했던 유명 건축가의 설계를 채택하지 않았다.  B동 건물에 비스듬히 붙어있는 특이한 건축물은 학생기숙사로 사용되고 있는 곳이다. 

비엔나의 운치있는 트램(Tram) 전차의 모습.
비엔나의 대중교통은 WIENER LINIEN 회사가 운영하는데 31개 트램노선, 80개 버스노선에 600대의 트램전차, 500대의 버스를 운영한다. 비엔나 대중교통은 거의 이용에 불편이 없을 정도로 잘 되어 있고, 환승도 용이하다. 도심전체 교통분담율이 53%를 넘는다고 하니 과히 대중교통 천국이라 할만하다. 비엔나는 노상트램으로 도시교통을 감당하기 힘들어 1969년경부터 지하노선을 만드는데 현재 5개노선 75km 의 지하노선이 있다. 
  



비엔나 시내에 있는 city-bike 의 모습.
마치 공중전화기나  gift-card 자동자판기처럼 생긴 곳에서 이용권을 넣고 비밀번호를 누른 후 사용할 수 있다. 비엔나 시내 곳곳에 관광객과 현지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city-bike 이용장소가 무인으로 운영되고 있다. 한국에서 송파구와 부천시 등이 무료자전거를 제공하였는데 도난 등 어려움을 많이 겪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서울시나 중요 도시들마다 도심 중심가에 이러한 자전거무인대여소 같은 곳을 만들어진다면 또다른 도시의 활기를 가져다 줄 것이다. 

Posted by 전성환 흙내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