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남미2010.07.07 01:14

부에노스 아이레스다.  배낭족들이 이태리 플로렌스 다음으로 오고 싶어 한다는 곳이란다.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남미에서 브라질 상파울로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곳인데 그다지 분주하거나 복잡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광역권 인구를 합쳐서 약 1,200만명 정도 된다고 하니 서울보다 조금 크다. 아마도 땅덩이가 인구에 비해 엄청나게 크기 때문이리라.
아르헨티나는 군부독재와 민주화의 과정이 우리나라와 여러모로 겹치는 부분이 많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첫 느낌은 참 활기차다는 느낌이다.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때이지만 사람들의 표정은 여유가 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는  스페인과 이태리 이민자를 중심으로 한 백인이 90%이고,  백인 남자와 원주민 여자의 피가 섞인 메스티조 7%, 아시아계 2%(주로 오키나와에서 건너온 일본인이 많음), 흑인 1%의 인구구성비를 갖고 있다고 하는 만큼 거리에는 거의 백인들 일색이다.  주목할 것은  남미에서 유대인들이 가장 많은데 약 30만명 정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들이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경제권을 꽤 장악하고 있어  아르헨티나 독립전쟁과  20세기 초반에 유대인들이 테러대상이 되어 곤욕이 치르기도 하였다. 

아르헨티나 특유의 리듬인 '탱고'와 미국식 카우보이와 비슷한 남미의 목동들인 '가우초'의 문화,  유럽식 건축문화 등 풍부한 문화를 가지고 있고,  라틴민족의 후예들답게 열정적이고, 낭만적인 문화를 키워왔다. 아르헨티나는 목축업과 관광산업, 탱고의 발상지 등으로 유명하고 현대사의 굴곡을 거치면서 한때는 남미 최고의 부자였지만 80년대, 90년대 경제위기와 함께 경제적 여유가 없어지면서 사회가 몹시 각박해지고 있다고도 한다.  소가죽만 벗겨서 수출하고 고기는 땅에 버릴 정도로 풍성했던 시절, 이태리제 대리석 몇 장과 소 한마리를 기꺼이 바꿀만한 풍성했던 시절이 있었다.  유럽보다 더 유럽스러운 도시를 남미 대륙에 만든 가난한 이민자들의 애환이 곳곳에 묻어 있는 정감있는 도시, 부에노스 아이레스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도심의 모습과 오래된 건축물들


여객선 터미널 주변에 있는 산 마르틴 광장의 모습.



산 마르틴 광장에서 열린 피스 베어전시회. 전 세계의 유명작가들이 만들어 보내온 거의 실물크기의 곰인형들이다.
남한의 작가와 북한의 인민작가가 만든 내용도 있다. 북한 작가가 솜씨가 더욱 돋보인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곳곳은 보행자전용도로가 발달되어 있다.


여객터미널 근처, 산 마르틴 역 주변의 신도심의 모습. 구도심과 달리 신축건물들이 제법 즐비하다


까사 로사다 알려진 대통령 궁의 모습


대통령 궁 뒷편의 5월 광장. 이곳에서 1810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부르짖었고,
군부통치 시절 행방불명된 가족들의 진실을 밝혀주길 요구하는 목요집회가 20년간 열린 곳도 이곳 5월 광장이다.


앞에 보이는 하얀 건물은 스페인 통치시절 총독부로 쓰였던 까빌도다. 현재 2층은 5월 혁명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중심가. 수많은 관광객들이 눈에 띈다.


그 유명한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아이스크림. 정말 태어나서 가장 맛있게 먹어보는 아이스크림이지 싶다.
크게 달지 않으면서 쫀득쫀득한 맛이 일품이다.


역대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로 꼽히는 마라도너가 활약한 보카주니어스 팀의 연고지인 '라 보카'.
탱고의 발상지답게 수많은 관광객들로 붐빈다.


삘라르 성모 교회안의 모습. 1732년 지은 교회인데 화려하지 않고 참 단아하다.


삘라르 성모교회 앞에 있는 예수십자가 나무조각상의 모습. 조각의 뛰어남과 예수의 고통의 잘 표현되어 있다.


레콜레따(Recoleta) 묘지 입구의 모습이다. 본래 수도원에 속한 정원이었는데 1822년 시의 명령으로 공동묘지가 되었다.
독립영웅, 작가, 과학자 등 아르헨티나 주요 인사들의 묘지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5억이상의 돈을 내면 부자들도 사용할 수 있다고 하니 그 의미가 퇴색되었다 할 것이다
.
 

묘지라기 보다 거의 저택에 가까울만큼 웅장하고 크다. 보통 2~3층 건물높이만큼 크고,
이태리 대리석으로 장식하거나 뛰어난 조각들로 묘지를 장식해 예술적 가치가 높은 곳이다 


사생아로 때어나 여배우로, 쿠테타의 주인공 페론 대령의 부인에서 대통령 부인으로 살면서
저소득층과 여성들의 절대적인 인기를 안고 살다가 33세에 저격당해 생을 마감한 에비타의 무덤.
레콜레타를 찾아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에비타를 추모하기 위해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에비타 묘지앞에는 언제나 생화가 걸려 있다.


레콜레타 화장실 입구에 쓰인 여러 국가의 언어. 한글도 제일 아래쪽에 보인다. 줄을 서라는 것과 돈을 주면 고맙겠다는 내용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꽃 조형물인 '플로라리스 헤네리까' 모습이다. 건축가 Eduardo Catalano 가 만들었는데 18톤 가량의 알루미늄과 스틸을 사용해서 해가 뜨는 낮에는 피고, 밤에는 접히는 움직이는 꽃을 만들었다. 높이가 대략  건물 10층높이는 됨직하다.


부유한 사람들이 사는 아파트의 모습


라틴아메리카박물관. MALBA로 불린다. 이 박물관은 아르헨티나의 재벌 에두아르도 꼬스딴띠니가 만들었는데
중남미의 현대미술을 연구하고 보존하기 위해 만들었다. 박물관 내부 촬영이 금지되어있는데 설계와 구조가 매우 독특하다. 


통나무를 깍아서 만든 의자인데 받침으로 쓰인 나무는 남녀를 상징한다.


나무의자가 마치 밀립속에 있는 덩굴나무의 일부였던 것처럼 조작한 의자.
이어붙이거나 떨어지지 않고 하나로 모두 이어진듯한 모습이 신비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마치 공룡을 연상케하는 설치물. 한국의 뎅뎅이덩쿨이나 칡덩굴같은 것으로 엮어서 만든 솜씨가 일품이다.


쇠사슬과 쇠구슬의 연결로 만든 일종의 모빌 같은 것인데 서로 밀고 당기고 하면서 마치 중력이 끄는 것처럼 끌거나 밀면서
계속 움직이면서 사각형의 다양한 조합을 나타내는 특징을 갖고 있다.


아래쪽은 분명 사랑하는 남, 녀를 연상케하는데 윗 부분은 마치 에어리언 처럼 서로 잡아먹으려고 하는 형상을 가졌다.
가식적 사랑, 사람의 이중성을 고발하기라도 하는 걸까


수많은 고대의 기호와 문자, 기호들로 퀼트하듯이 만든 작품인데 마치 사람의 형상을 묘사하기도 한 듯 하다


세계적인 벽화미술가이자, 식민지 민중의 애환과 역사를 가장 잘 나타낸다는 멕시코의 화가 디에고 리베라의 작품도록이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전경. 항구를 끼고 있는 도시의 모습이 아름답다.





Posted by 전성환 흙내

지난 봄 남미를 여행하면서 탱고의 발상지라고 하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보카' 지역을 둘러보았다. 
이곳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남쪽 해안지구에 위치하고 있는데 역사상 최고의 축구선수로 꼽는 '디에고 마라도나'가
선수시절을 보낸 '보카 쥬니어스'의 홈구장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또한 이곳은 급진정치의 본고장으로 오랫동안 사회당이 집권한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본래 아르헨티나의 항구도시로서 아프리카 노예들과 쿠바선원들이 모여들면서 하층빈민을 형성하면서 만들어진 곳인데 1880년대 초에 유럽의 스페인, 이태리, 프랑스 등에서 가난한 이민자들이 대거 몰려들면서 '보카'지역이 오늘날과 같은 형태를 띠게 되었다고 한다.  

'탱고(Tango)'. 부둣가 하층민들의 애환을 달래기 위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춤이 바로 '탱고(Tango)'다.
아프리카 노예들의 경쾌한 리듬인' 칸돔베(Candombe)', 쿠바선원들의 느린 선율인 '아바네다(Habaneda)"
아르헨티나 목동(가우초,Gaucho라고 한다)들의 즉흥적인 노래 '플라야다스(Playadas)'가 함께 섞였고,
유럽 댄스의 스텝과 회전(Turn)이 접목되었고, 또한 아브라조(abrazo - 상체를 가까이 끌어안는 자세)가 결합되어 오늘의 탱고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탱고에는 아프리카와 쿠바, 유럽의 춤과 노래와 선율이 그대로 남아있어 세상 어느곳에도 없는 매력을 준다.
보카지역에 가면 초입에서부터 '탱고' 춤차림의 옷과 포즈를 함께 취해주면서 돈을 받는 호객꾼들이 곳곳에 있다.
생머리를 곱게 묶고, 입술에 짙은 립스틱을 바르고, 옆선이 찢어져 허벅지가 드러나는 긴 치마를 입은 여인이
탱고춤을 추는 포즈를 취하자고 관광객을 유혹한다. 그것 또한 이곳의 큰 볼거리다.

개인적으로 '탱고(Tango)' 공연은 브라질 산토스에서 파타고니아 빙하지역을 지나 칠레 산티아고로 가는
크루즈배안에서 관람했다. 정말 전율할 정도였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본 플라멩고와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본 텝댄스와 다른 매력이 있었다. '탱고'에 대한 여러 찬사가 정말 거짓말이 아님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아름다운 선율, 하나의 가슴과 네 개의 다리"
"상체는 고요하나, 하체는 전쟁"
"삶처럼 꼬이고 꼬이는 어려운 춤"
"상대의 영역을 살짝 침범해 보는 춤"
"눈물이 나는 춤"
"전율이 흐르는 춤"

그랬다. 탱고에 대한 찬사들 그대로였다. 아르헨티나의 탱고영웅이였던 카를로스 가르텔(Carlos Gardel)이 말했듯이
'탱고는 플로어에서 아름답게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았다.
그림이나 재즈처럼 탱고 또한 그 '즉흥성'이
'탱고'의 매력일 것이다. 애석하게도 보카지역은 일반관광지로 퇴색된
느낌이다.  정말 탱고를 볼려면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에 있는 전용극장에서 관람해야 할 것이다.



탱고의 발상지 '라 보카' 지구의 입구다.
탱고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와 우루과이 몬테비데오가 그 시작으로 알려져 있다.


유럽의 여느 관광지처럼 사진과 그림을 참 많이 판다. 골목길이 정겹다.


라 보카의 양철집들과 벽돌. 허름한 건축물인데 그곳에 알록달록하고 화려한 색채로 장식한 것이 이채롭다. 이곳에 한 미술가가 입주하면서 라 보카 지역의 모든 집들의 색채를 바꾸는 운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유치하지 않으면서 환한 느낌을 준다.


기념품 가게 중 하나인데 가운데 인물이 아르헨티나 온 국민이 사랑하는 에비타로 불리는 에바 페론이고
그 옆의 오른쪽 상이 아르헨티나의 축구영웅 마라도나다. 
왼쪽 상은 정확히 모르겠으나 페론 대통령이거나 탱고영웅 가드델 아닐까 싶다.


라 보카 지역 곳곳에 있는 노천식당에서는 수시로 탱고공연이 있다.
그냥 무료로 관람하는 것도 재미가 쏠쏠한데 이들의 실력 또한 만만챦다.


보카 지역 입구에서 주로 남자  관광객들에게 호객행위를 하는 여성댄서다.
남성에게 모자들 씌워주고 여성댄서를 살짝 껴안는 탱고포즈를 취하게 하고 사진 한 컷. 3페소 정도 되었던 것 같다.


"정열의 춤" '아름다운 선율, 하나의 가슴과 네 개의 다리"
"상체는 고요하나, 하체는 전쟁"

"삶처럼 꼬이고 꼬이는 어려운 춤"
"상대의 영역을 살짝 침범해 보는 춤"
"눈물이 나는 춤",
"전율이 흐르는 춤"
이 공연을 보고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500명이 넘는 관중들이 한참동안 기립박수를 보냈다.
 


탱고의 황제로 불리면서 탱고를 전 세계적인 춤으로 확산시킨 카를로스 가르델(Carlos Gardel.1890~1935).
전용비행기로 콜럼비아로 공연을 떠나다 비행기 사고로 사망해 수백만의 팬들이 이를 애통해했다고 한다.   













Posted by 전성환 흙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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